◇이석희 선교사
한국밀알선교단 간사
한국밀알선교단 제1호 지역 교회 파송 장애인 선교사
뇌병변1급 장애인
1975년 경남 김해 출생
김해경원고등학교 졸업
부산아가페신학연구원 학부 졸업
전) 경남밀알수화찬양단 단원
전) 경남밀알문학회 회원
전) 김해예향교회 장애인부 책임간사
현) 부산생명수교회 파송선교사
현) 더크로스처치 명예 중보선교사
현) 한국밀알선교단 SIW(장애인 중보기도팀) 간사
현) 밀알기독문학회 회원
간증 집회에 약 150회 사역
장종택 목사 ‘은혜로다 주와 함께’ 작사자
‘유용한 도구’ 발행인
저서)
신앙수필집 ‘은혜로다 주와 함께’
찬양시집 ‘걷지 못하는 자유'
◇채널 컨텐츠 소개
쏠기도 : 모두와 함께 하나님께 쏘아올리고 싶은 기도
쏠찬시 : 모두와 함께 하나님께 쏘아올리는 찬양시
장남들 :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은 장애인의 삶
장애인선교사 이석희
4 weeks ago | [YT]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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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1 month ago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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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이석희 선교사의 기도 이야기 6 기도인도자로의 부르심
어느 날 기도중 하나님께서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옛날 시골집 부엌에서 볼 수 있었던 아궁이와 함께 그 앞에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나무를 넣고 있는 남자가 보였습니다. 아궁이 앞의 남자는 나였습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기도인도자로써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기도인도자는 기도의 자리를 사수하고 중보를 사명으로 여기는 이들로 하여금 상황에 맞는 기도제목으로 기도의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합니다. 아울러 기도의 방향을 설정하고 제시하며 중보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보니 신기하게도 중고등부 때부터 기도를 인도하는 위치인 기도인도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인도를 했는데 바쁜 일정으로 가끔 나한테 떠맡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전혀 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도제목을 생각하며 기도회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를 수없이 묵상했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가정예배를 드렸던 시즌이 있었는데 그때도 기도를 인도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기도를 인도하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그때 적절한 기도제목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항상 영적으로 민감해야했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 속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진짜 하나님의 원하심을 캐치해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모임을 완벽하게 준비했음에도 앞에서면 머리가 하얘지기도 합니다.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어떤 기도제목을 제시해야 될지 아예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준비마저도 잊어버리게 해서 철저하게 성령님만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한국밀알선교단 SIW 사역을 섬기면서 본격적으로 기도인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밀알선교단 안에서의 각종 기도회의 인도함과 동시에 밀알단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제목을 만드는 일 또한 사역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재단위에 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처럼 선교단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기도제목을 상황에 맞게 만드는 일은 밀알이라는 공동체 안에 기도의 불을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에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를 그분의 손에 들린 유용한도구로 쓰심에 감사감사 또 감사합니다.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레위기 6:12-13)
1 month ago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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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이석희 선교사의 기도 이야기 5 기도가 깊은 곳으로 가라!
부산 생명수교회의 파송 선교사로서 선교사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라는 타이틀은 무엇인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주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어떤 사역으로 선교사의 삶을 살아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홍해 앞에서 모세에게 하신말씀처럼 가만히 삶의 자리에서 머물러 있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기도에로의 부르심인 줄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교회를 정해야 했고 그를 위해 기도하던 중 생뚱맞은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기도가 깊은 곳으로 가라.” 기도가 깊은 곳?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독립을 해 다닐 교회를 한창 찾고 있었던 어느 날, 생명수교회에서 자주 언급했던 더크로스처치가 생각이 났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집과도 가까웠습니다. 더크로스처치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첫날 이곳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가 깊은 곳이라는 감동이 강하게 왔습니다. 더크로스처치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24시간 기도와 예배가 끊이지 않는 기도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가 깊은 곳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3년간의 더크로스처치에서의 생활을 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담금질’이었습니다. 기도의 삶을 살았다고 했지만 그분과의 더 깊은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나에게 더크로스처치에서의 생활은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기도가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그분과 어떻게 소통하며 신부로써 그분과의 비밀한 시간을 어떻게 갖는지 등등 더 깊은 차원의 기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이 생겼고 그 갈망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하나님을 향한 초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더크로스처치에서 배운 것은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20대부터 나의 기도는 주로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부르짖는 기도가 어떤 의미의 기도며 어떤 힘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혼 깊은 곳에 두껍게 쳐져 있는 휘장을 찢어내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마음에 휘장이 찢어질 때마다 내적으로 먼지처럼 쌓여있던 상처가 그분의 생명의 빛에 어두움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 속에 깊은 담금질을 경험하며 나의 기도는 점점 깊어져갔습니다. 깊어져 갈 뿐만 아니라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럴수록 기도가 도깨비방망이가 아님을, 기도는 그분을 구하는 것이고 그분의 얼굴을 보는 것임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3 months ago | [YT]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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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사랑하는 구독자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지난 6월 3일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바로 '장애인선교사 이석희'채널의 구독자가 1,000명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먼저 부족함에도 함께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이 어눌함에도 기도채널을 하는 것은 어눌한 발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한마디로 속도전입니다. 너무 빠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기 쉬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대속에서 어눌한 저의 발음 속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기 위해 채널을 운영해 왔습니다. 다른 채널 보다 너무 부족합니다. 하지만 나의 장애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대합니다.
구독자 1,000명을 기념하여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이 글에 선착순 2명 좋아요를 누르신 분들에게 저의 시집 '걷지못하는 자유'를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좋아요를 누름과 동시에 jv2022@hanmail.net으로 책을 받으실 주소를 남겨주세요.
장애인 선교사 이석희 채널을 통해서 큰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 months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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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이석희 선교사의 기도 이야기 4 SIW를 통한 기도에로의 부르심
한동안 장애인이라는 나 스스로의 편견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꿈틀 거리며 일어나는 꿈마다 제제하며 묵살하기 일쑤였습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인생이며 꿈이라는 것은 잠잘 때 꾸는 그런 단어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달랐습니다. 다를 뿐만 아니라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그분의 계획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영역 한 가운데 나를 두시고 기나긴 훈련 끝에 그분의 구체적인 자리에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그분의 꿈에 나를 동참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SIW중보기도 사역입니다. 한국밀알선교단에서 2005년부터 시작된 SIW(Strength In Weakness)는 장애인들이 할 수 있으면서도 하나님나라의 사역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에 동참케 하자라는 소망아래 시작된 사역입니다. 장애인들을 선교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중심에 서게 하자라는 새로운 선교방식입니다. 어느 날 한국밀알선교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광고를 보게 되었고, SIW 선교학교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난 거기에서 내 기도가 지금보다 훨씬 영향력 있게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받았습니다. 장애인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며 또 나눈 것으로 기도하는 모습, 장애라는 약함 속에 하나님의 강함을 나타내는 통로로 기도의 영역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찾아가서 참석한 선교학교는 마치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받은 호렙산의 떨기나무와 같았습니다. 거기서 내 발의 신을 벗었고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SIW 기도팀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의 영성은 왠지 나를 위해 차려놓은 밥상과도 같았습니다. 그 속에서 마음껏 기도의 맛을 누리고 영양분을 공급받고 이미 기도의 훈련이 된 많은 장애인들을 통해 더 깊은 기도로 내가 이제껏 알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고 흡수하게 하셨습니다. 그들과 만나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마냥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구한 것들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을 받은 것처럼 확신 속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SIW를 통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열방을 품게 된 것입니다. 매년 이루어지는 선교학교를 마치고 나면 장애인 지체들과 단기선교를 가는데 선교학교를 처음 참석한 그 해부터 하나님은 단기선교를 가게 하셨습니다. 처음 밟은 땅이 말레이시아이고 그때 경험한 기도의 역사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이후 태국과 일본, 여러 번의 말레이시아 단기선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구체적인 훈련을 이어나가셨습니다. 그리고 훨씬 크고 깊은 기도의 비밀들을 보여주셨고 알려주셨습니다.
SIW 사역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꼭 맞는 옷과 같았습니다. SIW 중보모임은 매주 밀알 사무실에서 있었지만 집이 김해라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매주 수요일만 되면 멀리서 그 모임을 그리워하며 그 시간에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그리움과 기도의 갈급함에 하나님께서는 매달 한번 김해와 서울을 오가며 SIW 중보사역에 함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SIW 협동간사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 나는 한창 독립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독립을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조병성 단장님은 지역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와서 본격적으로 SIW사역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해오셨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독립의 구체적인 이유와 당위성이 생긴 것입니다. 장애가 있어 늘 마음에 쓰여서 독립은 더더욱 반대하셨던 부모님도 선교사로써의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하며 독립을 허락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고 있던 부산 생명수교회를 통해 선교사 파송까지 받게 되어 지역교회에서 한국밀알선교단으로 파송한 장애인선교사의 첫 번째 사례가 되었습니다.
5 months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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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이석희 선교사의 기도 이야기 3 기도가 바뀐 두 때.
내 인생의 기도가 바뀐 때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날, 기도하는데 평소에는 이런 기도를 해야지 라고 머릿속에 기도제목을 생각하고 기도를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기도의 제목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기도를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너무 그 순간이 좋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라고 어느 분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기도가 깊어졌고 어떠한 상황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분별 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에 의한 기도는 하면 할수록 신기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의 기도제목으로 나도 모르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기도가 바뀐 때는 방언기도가 터졌을 때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권유로 참석한 기도회에서 혀가 꼬부라져 돌아가는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방언기도였습니다. 방언기도를 하고난 뒤로부터 더 깊은 기도,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기도를 맛보았습니다. 때로는 두 시간, 세 시간 밤을 새워가며 기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방언기도는 나의 기도생활에 많은 유익을 주었고,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며 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더 깊은 기도의 차원으로 나를 초청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체험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을 관리해주지 못해 은사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때쯤 하나님께서는 한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고 그 목사님을 통해 깊은 차원의 기도를 훈련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듣는 법과 구별하는 법, 또 그것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법, 삶에 적용하는 법등 올바르고 건강한 실제적인 기도의 훈련들을 10여년 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즌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로 기도의 영향력을 흘려보내게 하셨습니다. 나의 기도가 굵어지고 깊어진 시즌을 말하라면 바로 그 시즌이었을 것입니다. 기도의 수많은 체험을 해 오면서 그때그때마다 나를 만나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기도 이야기 3 기도가 바뀐 두 때.
내 인생의 기도가 바뀐 때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날, 기도하는데 평소에는 이런 기도를 해야지 라고 머릿속에 기도제목을 생각하고 기도를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기도의 제목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기도를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너무 그 순간이 좋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라고 어느 분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기도가 깊어졌고 어떠한 상황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분별 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에 의한 기도는 하면 할수록 신기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의 기도제목으로 나도 모르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기도가 바뀐 때는 방언기도가 터졌을 때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권유로 참석한 기도회에서 혀가 꼬부라져 돌아가는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방언기도였습니다. 방언기도를 하고난 뒤로부터 더 깊은 기도,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기도를 맛보았습니다. 때로는 두 시간, 세 시간 밤을 새워가며 기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방언기도는 나의 기도생활에 많은 유익을 주었고,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며 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더 깊은 기도의 차원으로 나를 초청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체험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을 관리해주지 못해 은사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때쯤 하나님께서는 한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고 그 목사님을 통해 깊은 차원의 기도를 훈련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듣는 법과 구별하는 법, 또 그것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법, 삶에 적용하는 법등 올바르고 건강한 실제적인 기도의 훈련들을 10여년 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즌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로 기도의 영향력을 흘려보내게 하셨습니다. 나의 기도가 굵어지고 깊어진 시즌을 말하라면 바로 그 시즌이었을 것입니다. 기도의 수많은 체험을 해 오면서 그때그때마다 나를 만나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기도 이야기 3 기도가 바뀐 두 때.
내 인생의 기도가 바뀐 때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날, 기도하는데 평소에는 이런 기도를 해야지 라고 머릿속에 기도제목을 생각하고 기도를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기도의 제목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기도를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너무 그 순간이 좋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라고 어느 분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기도가 깊어졌고 어떠한 상황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분별 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에 의한 기도는 하면 할수록 신기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의 기도제목으로 나도 모르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기도가 바뀐 때는 방언기도가 터졌을 때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권유로 참석한 기도회에서 혀가 꼬부라져 돌아가는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방언기도였습니다. 방언기도를 하고난 뒤로부터 더 깊은 기도,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기도를 맛보았습니다. 때로는 두 시간, 세 시간 밤을 새워가며 기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방언기도는 나의 기도생활에 많은 유익을 주었고,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며 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더 깊은 기도의 차원으로 나를 초청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체험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을 관리해주지 못해 은사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때쯤 하나님께서는 한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고 그 목사님을 통해 깊은 차원의 기도를 훈련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듣는 법과 구별하는 법, 또 그것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법, 삶에 적용하는 법등 올바르고 건강한 실제적인 기도의 훈련들을 10여년 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즌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로 기도의 영향력을 흘려보내게 하셨습니다. 나의 기도가 굵어지고 깊어진 시즌을 말하라면 바로 그 시즌이었을 것입니다. 기도의 수많은 체험을 해 오면서 그때그때마다 나를 만나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기도 이야기 3 기도가 바뀐 두 때.
내 인생의 기도가 바뀐 때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날, 기도하는데 평소에는 이런 기도를 해야지 라고 머릿속에 기도제목을 생각하고 기도를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기도의 제목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기도를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너무 그 순간이 좋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라고 어느 분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기도가 깊어졌고 어떠한 상황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분별 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에 의한 기도는 하면 할수록 신기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의 기도제목으로 나도 모르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기도가 바뀐 때는 방언기도가 터졌을 때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권유로 참석한 기도회에서 혀가 꼬부라져 돌아가는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방언기도였습니다. 방언기도를 하고난 뒤로부터 더 깊은 기도,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기도를 맛보았습니다. 때로는 두 시간, 세 시간 밤을 새워가며 기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방언기도는 나의 기도생활에 많은 유익을 주었고,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며 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더 깊은 기도의 차원으로 나를 초청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체험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을 관리해주지 못해 은사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때쯤 하나님께서는 한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고 그 목사님을 통해 깊은 차원의 기도를 훈련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듣는 법과 구별하는 법, 또 그것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법, 삶에 적용하는 법등 올바르고 건강한 실제적인 기도의 훈련들을 10여년 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즌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로 기도의 영향력을 흘려보내게 하셨습니다. 나의 기도가 굵어지고 깊어진 시즌을 말하라면 바로 그 시즌이었을 것입니다. 기도의 수많은 체험을 해 오면서 그때그때마다 나를 만나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6 months ago (edited) | [YT]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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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이석희 선교사의 기도 이야기 2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라도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보니 눈이 떠지지 않아 옆에 있던 어머니와 누나는 울며불며 기도를 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고 나니 눈이 떠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스티븐존슨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고 고름이 나 두달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밤낮 기도로 주님께 매달렸고 수백 명의 사람들의 중보로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로 인한 엄청난 갈등과 좌절 속에 살아야했던 시절, 그 때도 기도해야 했었습니다. 하고 싶어서 한 기도라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왜 장애인으로 태어났는가에 대한 의문은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장애의 원인에 대해 답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답을 얻을 것이라 굳게 믿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결국 내가 그렇게 알고 싶어 했던 장애의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7 months ago (edited)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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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이석희선교사의 기도이야기 1 ‘기도하면 다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기까지는 무언가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꼭 맞는 옷을 입는 것과 같이 그가 할 일을 찾기까지는 무언가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성품이 좋으신 부모님의 영향을, 어떤 이는 어릴 때부터 접한 많은 책의 영향을 어떤 이는 좋은 환경에 영향을……. 그러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자라온 환경이 경상도라 가족이 그렇게 화목했던 것도 아니고 정말 내세울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영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도’ 영향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기도의 문화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꾸준한 기도였습니다. 꾸준히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신앙을 전수 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기도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기도하면 다 된다.’는 이 한마디로 기도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장애를 가진 것에 대해 아파하며 밤낮 기도의 제단을 쌓으셨습니다. 주일이면 낮 예배부터 저녁예배까지, 금요일이면 철야예배, 능력이 많으신 목사님이 계신 곳이라면 그 어디든지 나를 데리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셨습니다. 하나님 믿는 자로서 기도는 당연한 것이지만, 연약하고 힘없는 피조물인 인간이기에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러한 기도의 문화 속에서 자라난 나에게는 기도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면 다 된다.” 라는 어머니의 흔들림 없는 확신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만 바라보게 했습니다.
내 생애 첫 기도제목은 ‘하나님! 걷게 해주세요!’였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기도제목이자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기도원을 참 많이 데리고 다녔습니다. 한번은 오산리 기도원을 갔는데 어떤 목사님의 권유로 3일 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6살 때인가 7살 때로 기억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장애로 인해 몸에 힘이 없었고 균형을 잡지 못해 뒤로 넘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가 금식을 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금식기도라는 의미를 채 깨닫기 어려운 나이임에도 3일 밤낮을 굶었던 것은 “기도하면 다 된다.”라는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7 months ago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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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선교사 이석희
8 months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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