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레노 신부는 2026년 6월 13일 브라질 마투그로수주 자우루에서 순교자로 시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느님의 종’이나 ‘가경자’가 아니라, 교회가 공적으로 공경을 허락한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사제 순교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첨부 자료 1쪽 사진에는 왼쪽에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 가운데에 마리아사제운동 창설자 스테파노 곱비 신부, 오른쪽에 오타비오 피바가 함께 서 있습니다. 이 사진은 나자레노 신부가 마리아사제운동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 복자 나자레노의 소개기사..
1. 출생과 사제 성소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는 1940년 3월 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의 뿌리는 로마 동쪽에 있는 수비아코 지역에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활달하고 장난기가 많았지만, 신학교에 들어간 뒤 침묵과 기도, 순종을 배우면서 사제 성소를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수비아코의 수도원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66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1971년까지 로마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본당에서 보좌 사제로 사목했습니다.
오타비오 피바의 증언에 따르면, 나자레노 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성모님께 특별히 두 가지 은총을 청했다고 합니다. 순결하게 살게 해 주시고, 돈에 집착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두 가지 청원은 그의 평생을 관통했습니다. 그는 사제로서 정결하게 살고자 했고, 수많은 건축과 사회사업을 추진하면서도 돈 자체를 소유하거나 축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주어진다고 믿었습니다.
2. 브라질 선교를 선택하다 나자레노 신부는 로마에서 비교적 안정된 사제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71년 ‘마투그로수 작전’이라는 선교 활동을 알게 된 뒤, 교구장의 허락을 받아 브라질로 떠났습니다. 1972년 그는 브라질 중서부 마투그로수주 자우루에 정착했습니다. 자우루는 볼리비아 국경과 가까운 변방으로, 당시에는 도로와 전기, 의료시설, 통신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가난한 지역이었습니다. 여러 마을이 숲속에 흩어져 있었으며, 사제가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말을 타고 숲길을 지나 멀리 떨어진 마을들을 방문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세례를 주고, 교리를 가르치며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선교 활동은 2001년 순교할 때까지 거의 3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처음 자우루에 도착했을 때 그가 발견한 것은 제대로 된 성당이 아니라 허물어져 가는 작은 경당이었습니다. 피데스 통신이 전한 증언에 따르면, 그는 그곳에서 성모님께서 자신에게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내적 위로를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자우루는 그의 선교 활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3. 성당만 세운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공동체’를 세웠다 나자레노 신부가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은 건물을 많이 세운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기도하고 성체를 흠숭하는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는 자우루에 필라르의 성모 본당, 곧 ‘기둥의 성모 본당’을 세웠습니다. 본당은 1976년 10월 12일 정식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 본당을 중심으로 숲과 농촌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신자들을 모아 57개의 농촌 교회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사제가 매일 방문할 수 없는 작은 공동체에서도 신자들이 스스로 모여 기도하고 교리를 배우며 성체조배를 이어 가도록 양성했습니다. 교황청 시성부 자료는 그가 이 공동체들에 매일 성체조배를 하도록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세운 공동체는 사제가 없으면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수동적인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교리교사와 평신도 봉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도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성체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 점에서 나자레노 신부의 선교는 단순한 사회개발이 아니라 분명한 성체 중심의 복음화였습니다.
4.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사랑 나자레노 신부는 영혼의 구원만 말하면서 사람들의 육체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복음 선포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은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자우루 지역에는 가까운 병원이 없었고, 임산부들이 출산 중 목숨을 잃거나 어린이들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의료시설이 약 200㎞ 떨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작은 진료소를 세우기 시작했고, 이 시설은 점차 지역의 중요한 병원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사목·사회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의 집’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와 급식 교리교육센터 농촌 지역 경당과 공동체 시설 지역 사제 성소를 위한 소신학교 교황청 시성부는 그가 진료소를 설립하여 지역의 주요 병원으로 성장시켰고, 노인시설과 수백 명의 어린이를 위한 학교, 소신학교를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피데스 통신에 따르면 그가 추진한 소신학교를 통하여 지역 교회에 초기의 현지인 사제 성소들이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돈이 있어서 일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타비오 피바의 증언에 따르면, 건축 자재비가 부족해 더 이상 일을 진행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뜻밖의 후원금이 들어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자레노 신부는 이를 자신의 능력이나 수완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5. 나자레노 신부의 영성 나자레노 신부의 영성은 다음 네 가지 중심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성체성사 그의 모든 사목 활동의 중심에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먼저 성체 앞에 머물렀고, 신자들에게도 성체조배를 가르쳤습니다. 성당과 공동체를 세우는 목적도 사람들이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그 힘으로 복음적인 삶을 살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시복식 강론에서도 주앙 브라즈 데 아비즈 추기경은 나자레노 신부가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고 불의와 싸울 수 있었던 내적 힘은 성체성사에서 나왔다고 강조했습니다. ② 성모님과 티 없으신 성심 그는 성모님을 단순히 개인적으로 좋아한 사제가 아니라, 자신의 사제직과 선교 전체를 성모님께 맡긴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고, 성모님께서 자신을 예수님과 더욱 닮은 사제로 양육하시도록 맡겼습니다. 그의 선교지에는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이라는 이름을 붙인 노인시설과 성지가 세워졌습니다. 시복식에서 전해진 증언은 나자레노 신부가 성체와 성모님이라는 “두 개의 필수적인 토대” 위에서 사제생활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③ 고해성사와 자비 겉으로 볼 때 나자레노 신부는 원칙이 분명하고 엄격한 이탈리아 사제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해소에 앉으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타비오 피바는 처음에는 “이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면 꾸중을 듣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고해성사 안에서 그는 성체 안의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제로 변했다고 회상합니다. 나자레노 신부가 자주 했다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해성사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에게 고해성사는 죄인을 비난하고 심판하는 시간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녀가 자비로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성사였습니다. ④ 가난과 하느님의 섭리 그는 많은 사업을 추진했지만, 돈과 권력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필요한 일을 시작하고, 하느님께서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청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가난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어도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행동하는 적극적인 복음적 가난이었습니다.
6. 마리아사제운동과 나자레노 신부 나자레노 신부는 마리아사제운동과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는 1987년 마리아사제운동에 참여했고, 이듬해인 1988년 브라질 전국 책임 사제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뒤 브라질 전역을 다니며 사제들과 평신도 가정들을 위한 체나콜로를 조직하고 지도했습니다. 첨부된 사진에서 나자레노 신부가 스테파노 곱비 신부와 오타비오 피바 사이에 서 있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는 단순히 마리아사제운동의 명칭을 사용한 사람이 아니라, 그 영성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한 사제였습니다.
그가 삶으로 보여 준 마리아사제운동의 영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티 없으신 성모 성심에 대한 봉헌 그는 자신의 계획을 앞세우기보다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고, 성모님께서 자신을 예수님의 사제로 만들어 주시도록 내어 맡겼습니다. 교황과 교회에 대한 일치 그는 교황에게 깊은 사랑과 순종을 보였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운동이나 독립적인 공동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구장의 허락을 받고 선교지로 떠났고, 지역 교회와 일치하여 활동했습니다. 성체와 고해성사의 회복 체나콜로를 단순한 친교 모임으로 만들지 않고, 성체조배와 묵주기도, 고해성사와 회개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영적 어린이의 마음 그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자신을 성모님께 맡기는 겸손과 단순함을 살았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 성모님께 대한 봉헌은 현실을 외면하는 신심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파괴하는 악에 맞서게 했습니다.
2026년 시복식에 참석한 마리아사제운동 국제대표 루카 페스카토리 신부도, 나자레노 신부의 사제적 마음을 성모님께서 양육하셨으며 그의 사제직이 남긴 열매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Diocese de Caceres
7. 마약과 매춘에 맞선 사제 자우루는 볼리비아 국경과 가까워 마약 유통의 영향을 받기 쉬운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대형 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외부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그 주변에 마약 판매와 매춘, 미성년자 착취가 확산되었습니다. 나자레노 신부는 이를 단순한 지역사회의 풍속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정을 파괴하고, 젊은이들의 영혼과 미래를 빼앗는 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강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경고했고, 젊은이들이 마약과 매춘에 빠지지 않도록 매주 토요일 밤 건전한 모임과 활동을 마련했습니다.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강조한 것은 폭력이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영적 무기였습니다. 성체조배와 묵주기도,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여러분을 구할 것입니다. 그의 활동으로 마약 밀매와 매춘을 통해 이익을 얻던 세력들은 경제적·사회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나자레노 신부의 존재는 점점 더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8. 순교의 밤 2001년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나자레노 신부는 약 100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체나콜로를 거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가벼운 비가 내리자 “이것은 나를 위한 하늘의 눈물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또 신자들에게 “나를 찾거든 언제나 감실 아래에서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날 밤 9시경, 복면을 쓴 두 남자가 사제관에 침입했습니다. 겉으로는 돈을 요구하며 강도 사건처럼 꾸미려 했지만, 돈을 가져가는 것이 실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피데스 통신이 전한 증언에 따르면, 범인 가운데 한 사람은 나자레노 신부에게 자신들이 그를 죽이러 왔으며, 그가 자신들을 “너무 많이 방해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범인은 나자레노 신부의 뒤쪽 머리와 목 부위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총탄은 그의 네 번째 척추 부근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카세리스와 상파울루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열하루 동안 고통을 겪은 뒤 2001년 2월 22일, 61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9.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용서하다 나자레노 신부의 순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순히 총을 맞아 죽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첨부 자료와 피데스 통신 모두 그가 병원에서 범인들을 용서한 뒤 선종했다고 전합니다. 스테파노 곱비 신부도 그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용서는 범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정의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약과 매춘, 인간 착취라는 악에는 끝까지 맞섰지만, 자신을 공격한 개인들의 영혼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단순한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르는 사제 순교자였음을 보여 줍니다.
10. 왜 교회는 그의 죽음을 ‘순교’로 인정했는가 모든 억울한 죽음이 교회법적인 의미의 순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어떤 죽음을 순교로 인정하려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와 신앙에 충실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으며, 박해자 쪽에도 신앙이나 그 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를 라틴어로 오디움 피데이, odium fidei, 곧 ‘신앙에 대한 증오’라고 합니다. 나자레노 신부는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이나 금전 문제 때문에 살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마약과 매춘, 미성년자 착취에 맞섰기 때문에 제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제직과 복음적 사목이 범죄 세력의 이익을 방해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25년 4월 14일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가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살해되었다는 순교 교령의 공포를 승인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중 마지막으로 승인된 순교 교령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티칸 뉴스
11. 2026년 6월 13일 시복 나자레노 신부의 시복식은 2026년 6월 13일 오전 10시, 그가 평생 사목했던 브라질 마투그로수주 자우루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교황 레오 14세의 특사로 파견된 주앙 브라즈 데 아비즈 추기경이 시복미사를 주례했으며, 수천 명의 신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시복식은 마투그로수주에서 거행된 최초의 시복식으로 전해집니다.
바티칸 뉴스 교황의 교서에서 나자레노 신부는 다음과 같은 인물로 소개되었습니다. 교구 사제이며 순교자 지칠 줄 모르는 복음의 선교사 사회적 자선사업을 풍성하게 일으킨 설립자 성모 신심을 헌신적으로 증진한 사제. 그의 전례적 기념일은 순교일인 2월 22일이 아니라, 교황의 시복 교서에 따라 매년 1월 12일로 정해졌습니다. 이날은 그가 자우루에서 본격적인 선교사목을 시작한 날과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복 다음 날인 2026년 6월 14일, 교황 레오 14세는 삼종기도 후 나자레노 신부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가 "복음의 이름으로 가장 가난한 이들을 보호했기 때문에 순교한 사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의 모범과 전구가 사제들과 온 교회의 선교를 지지해 주기를 기도했습니다.
12. 나자레노 신부의 성덕의 비결 나자레노 신부의 성덕은 어느 한 가지 특별한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의 성덕은 다음과 같은 일상적 충실함이 순교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 결과였습니다. 그는 성체 앞에 머무는 사제였습니다. 그는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제였습니다. 그는 고해소에서 자비로운 아버지가 된 사제였습니다. 그는 교황과 주교에게 순종한 교회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돈보다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한 사제였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사제였습니다. 그는 불의에는 맞섰지만 원수는 용서한 사제였습니다. 첨부 자료에 실린 피바 주교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성덕의 비결은 성모님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를 성체 안의 예수님께 인도하시고, 골고타에서 자신을 봉헌하신 예수님을 닮도록 양육하셨습니다. 그 결과 나자레노 신부는 마지막에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13. 마리아사제운동과 체나콜로에 주는 의미 복자 나자레노 신부의 시복은 마리아사제운동 전체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마리아사제운동의 영성을 단지 메시지를 읽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제직과 선교생활 안에서 실현했습니다. 체나콜로에서 바친 기도는 그를 세상과 멀어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에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성모 성심에 대한 봉헌은 그를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약과 매춘, 미성년자 착취에 맞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성체조배는 그를 현실 도피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병원과 노인시설, 학교와 본당 공동체를 세우게 했습니다. 교황과의 일치는 그에게 특권 의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역 교구장에게 순종하며 가장 가난한 변방에서 봉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자 나자레노 신부는 체나콜로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 줍니다. 체나콜로는 자신들만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성령을 청하고 성체 안의 예수님을 만나며, 그 힘으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에게 나아가는 교회를 위한 기도와 봉헌의 영성운동입니다.
맺음말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는 화려한 신학 저술이나 높은 교회 직책으로 알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외딴 선교지에서 성체를 모시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병든 이와 노인과 어린이를 돌본 평범한 본당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충실함이 마지막에는 자신의 피를 흘리는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는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성체 안의 예수님에게서 힘을 받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키다가 원수를 용서하며 생명을 바친 마리아사제운동의 사제 순교자입니다.
+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사제 순교자여, 사제들과 선교사들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우리도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 온전히 봉헌된 삶을 살도록 빌어 주소서. 아멘.
[메시지:292.10] 너희는 언제나 내 평화 안에 머물면서 만민을 위해 평화의 도구가 되기 바란다.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엄하게 당부하거니와, 너희는 침묵을 지키고, 애덕과 일치를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하며, 곤궁에 처한 사람은 누구든지 돕고, 누구와 더불어서건 항상 평화와 화해를 (심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라.
[국제MSM 대표 루카 페스카토리 신부님의 전달사항 ] 루까신부님의 전달사항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지금 브라질에 와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님의 시복식이 거행됩니다. 고(故) 스테파노 신부님께서는 란치오티 신부님의 순교에 의한 시복 시성 절차가 시작되기를 강력히 원하셨습니다. 란치오티 신부님의 순교는 2025년 4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2026년 6월 13일 토요일, 바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 기념일에 그분은 복자로 선포될 예정입니다. 예수 성심을 닮은 한 사제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시고, 자신의 생명을 봉헌함으로써 온 세상에 모범으로 드러나게 하신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감사드립니다. 이로써 마리아사제운동(MSM)의 정신, 곧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의 정신이 모든 이에게 성덕에 이르는 길로 제시되고 드러나게 됩니다. 시복식은 아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시복 미사는 이탈리아 시간으로 오후 3시, 브라질 시간으로 오전 9시에 브라질 마투그로수 주 자우루(Jauru)에서 거행됩니다. 이곳은 나자레노 신부님께서 사목하셨던 본당입니다. 시복 미사 전에 체나콜로 기도회(Cenacolo)가 예정되어 있으나, 이것이 중계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 1940년 3월 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 1966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 1971년 브라질 선교사로 파견되어 브라질 마투그로수 주 자우루(Jauru) 지역에서 약 30년 동안 사목했습니다. ([바티칸 뉴스][1])
### 사목 활동
란치오티 신부는 단순히 성사 집전만 한 것이 아니라 지역 복음화와 인간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 본당 설립 * 수십 개의 농촌 공동체 조직 * 성체조배 확산 * 학교 설립 * 의료 지원 사업 * 양로원 운영 * 소신학교 설립 등에 힘썼습니다.
특히 그는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이 매우 깊은 사제였습니다. 매일 성체 안의 예수님께 머물며 사목의 힘을 얻었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한 삶을 살았습니다.
### 마리아사제운동(MSM)과의 관계
란치오티 신부는 마리아사제운동의 브라질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스테파노 곱비 신부의 가까운 협력자였습니다. 그는 체나콜로 모임을 전국적으로 이끌며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봉헌된 삶을 강조했습니다.
### 순교
란치오티 신부는 마약 거래, 미성년자 착취, 매춘 조직 등 지역의 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활동 때문에 적개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2001년 2월 11일, 괴한들이 사제관에 침입하여 그를 총으로 쏘았습니다. 그는 열흘 넘게 고통을 겪다가 2월 22일 선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까지 범인들을 용서했습니다.
### 복자품
교회는 그의 죽음을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앙에 대한 증오(odium fidei)" 때문에 일어난 순교로 인정했습니다.
* 2025년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순교를 승인하셨고, * 2026년 6월 13일 브라질 자우루에서 시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 영성의 핵심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체 중심의 삶 2. 티 없으신 성모 성심에 대한 봉헌 3.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
그의 삶은 마리아사제운동이 강조하는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 완전히 봉헌된 사제"의 전형으로 자주 소개됩니다. 체나콜로 회원들에게는 특별히 의미 있는 복자입니다. 그는 곱비 신부의 영적 아들이었고, 성체와 성모님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증언하여 결국 순교의 은총까지 받은 사제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찬미 예수님
2026년 9월 성모신심 미사와 체나콜로에 초대합니다.
- 일 시 : 9월 12일(토)
10:00 : 체나콜로
11:00 : 성모신심미사(주례: 신동원 요셉 신부)
- 장소: 가톨릭회관 3층
- 문의: 010-7142-0513
※ 중재기도 신청하시면 3개월간 기도와 미사 때 제대 봉헌합니다.
(문자/이메일; 010-9995-5284, savior69@naver.com)
- 묵주기도 : 빛의 신비
[메시지:109.16] 나와 함께 '예'라고 말씀드려라. 그렇게 해야 하느님 뜻에 완전히 순종한 나의 '예'가 너희 안에서 언제나 재현된다.
2 weeks ago | [YT]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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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전국M.S.M.공지]
■ 제목: 공동구속자의 용어 번역.
■ 한국 천주교 CBCK 신앙교리 위원회에서 이에 대해서 회의를 가졌으며, 적절한 용어를 대체해서 사용하기로 하였으며, 주교회의를 통해서 발표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전국 마리아사제 운동{M.S.M.) 신부님들과 신자분들은 새 번역 용어가 발표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바라며, '공동 구속자' 용어는 사용하지 마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1 month ago | [YT]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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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1 month ago | [YT]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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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 ■
Beato Nazareno Lanciotti, 1940–2001
나자레노 신부는 2026년 6월 13일 브라질 마투그로수주 자우루에서 순교자로 시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느님의 종’이나 ‘가경자’가 아니라, 교회가 공적으로 공경을 허락한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사제 순교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첨부 자료 1쪽 사진에는 왼쪽에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 가운데에 마리아사제운동 창설자 스테파노 곱비 신부, 오른쪽에 오타비오 피바가 함께 서 있습니다. 이 사진은 나자레노 신부가 마리아사제운동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 복자 나자레노의 소개기사..
1. 출생과 사제 성소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는 1940년 3월 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의 뿌리는 로마 동쪽에 있는 수비아코 지역에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활달하고 장난기가 많았지만, 신학교에 들어간 뒤 침묵과 기도, 순종을 배우면서 사제 성소를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수비아코의 수도원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66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1971년까지 로마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본당에서 보좌 사제로 사목했습니다.
오타비오 피바의 증언에 따르면, 나자레노 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성모님께 특별히 두 가지 은총을 청했다고 합니다.
순결하게 살게 해 주시고, 돈에 집착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두 가지 청원은 그의 평생을 관통했습니다. 그는 사제로서 정결하게 살고자 했고, 수많은 건축과 사회사업을 추진하면서도 돈 자체를 소유하거나 축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주어진다고 믿었습니다.
2. 브라질 선교를 선택하다
나자레노 신부는 로마에서 비교적 안정된 사제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71년 ‘마투그로수 작전’이라는 선교 활동을 알게 된 뒤, 교구장의 허락을 받아 브라질로 떠났습니다.
1972년 그는 브라질 중서부 마투그로수주 자우루에 정착했습니다. 자우루는 볼리비아 국경과 가까운 변방으로, 당시에는 도로와 전기, 의료시설, 통신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가난한 지역이었습니다. 여러 마을이 숲속에 흩어져 있었으며, 사제가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말을 타고 숲길을 지나 멀리 떨어진 마을들을 방문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세례를 주고, 교리를 가르치며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선교 활동은 2001년 순교할 때까지 거의 3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처음 자우루에 도착했을 때 그가 발견한 것은 제대로 된 성당이 아니라 허물어져 가는 작은 경당이었습니다. 피데스 통신이 전한 증언에 따르면, 그는 그곳에서 성모님께서 자신에게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내적 위로를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자우루는 그의 선교 활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3. 성당만 세운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공동체’를 세웠다
나자레노 신부가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은 건물을 많이 세운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기도하고 성체를 흠숭하는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는 자우루에 필라르의 성모 본당, 곧 ‘기둥의 성모 본당’을 세웠습니다. 본당은 1976년 10월 12일 정식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 본당을 중심으로 숲과 농촌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신자들을 모아 57개의 농촌 교회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사제가 매일 방문할 수 없는 작은 공동체에서도 신자들이 스스로 모여 기도하고 교리를 배우며 성체조배를 이어 가도록 양성했습니다. 교황청 시성부 자료는 그가 이 공동체들에 매일 성체조배를 하도록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세운 공동체는 사제가 없으면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수동적인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교리교사와 평신도 봉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도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성체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 점에서 나자레노 신부의 선교는 단순한 사회개발이 아니라 분명한 성체 중심의 복음화였습니다.
4.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사랑
나자레노 신부는 영혼의 구원만 말하면서 사람들의 육체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복음 선포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은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자우루 지역에는 가까운 병원이 없었고, 임산부들이 출산 중 목숨을 잃거나 어린이들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의료시설이 약 200㎞ 떨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작은 진료소를 세우기 시작했고, 이 시설은 점차 지역의 중요한 병원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사목·사회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의 집’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와 급식
교리교육센터
농촌 지역 경당과 공동체 시설
지역 사제 성소를 위한 소신학교
교황청 시성부는 그가 진료소를 설립하여 지역의 주요 병원으로 성장시켰고, 노인시설과 수백 명의 어린이를 위한 학교, 소신학교를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피데스 통신에 따르면 그가 추진한 소신학교를 통하여 지역 교회에 초기의 현지인 사제 성소들이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돈이 있어서 일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타비오 피바의 증언에 따르면, 건축 자재비가 부족해 더 이상 일을 진행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뜻밖의 후원금이 들어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자레노 신부는 이를 자신의 능력이나 수완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5. 나자레노 신부의 영성
나자레노 신부의 영성은 다음 네 가지 중심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성체성사
그의 모든 사목 활동의 중심에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먼저 성체 앞에 머물렀고, 신자들에게도 성체조배를 가르쳤습니다.
성당과 공동체를 세우는 목적도 사람들이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그 힘으로 복음적인 삶을 살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시복식 강론에서도 주앙 브라즈 데 아비즈 추기경은 나자레노 신부가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고 불의와 싸울 수 있었던 내적 힘은 성체성사에서 나왔다고 강조했습니다.
② 성모님과 티 없으신 성심
그는 성모님을 단순히 개인적으로 좋아한 사제가 아니라, 자신의 사제직과 선교 전체를 성모님께 맡긴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고, 성모님께서 자신을 예수님과 더욱 닮은 사제로 양육하시도록 맡겼습니다. 그의 선교지에는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이라는 이름을 붙인 노인시설과 성지가 세워졌습니다.
시복식에서 전해진 증언은 나자레노 신부가 성체와 성모님이라는 “두 개의 필수적인 토대” 위에서 사제생활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③ 고해성사와 자비
겉으로 볼 때 나자레노 신부는 원칙이 분명하고 엄격한 이탈리아 사제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해소에 앉으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타비오 피바는 처음에는 “이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면 꾸중을 듣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고해성사 안에서 그는 성체 안의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제로 변했다고 회상합니다.
나자레노 신부가 자주 했다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해성사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에게 고해성사는 죄인을 비난하고 심판하는 시간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녀가 자비로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성사였습니다.
④ 가난과 하느님의 섭리
그는 많은 사업을 추진했지만, 돈과 권력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필요한 일을 시작하고, 하느님께서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청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가난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어도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행동하는 적극적인 복음적 가난이었습니다.
6. 마리아사제운동과 나자레노 신부
나자레노 신부는 마리아사제운동과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는 1987년 마리아사제운동에 참여했고, 이듬해인 1988년 브라질 전국 책임 사제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뒤 브라질 전역을 다니며 사제들과 평신도 가정들을 위한 체나콜로를 조직하고 지도했습니다.
첨부된 사진에서 나자레노 신부가 스테파노 곱비 신부와 오타비오 피바 사이에 서 있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는 단순히 마리아사제운동의 명칭을 사용한 사람이 아니라, 그 영성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한 사제였습니다.
그가 삶으로 보여 준 마리아사제운동의 영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티 없으신 성모 성심에 대한 봉헌
그는 자신의 계획을 앞세우기보다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고, 성모님께서 자신을 예수님의 사제로 만들어 주시도록 내어 맡겼습니다.
교황과 교회에 대한 일치
그는 교황에게 깊은 사랑과 순종을 보였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운동이나 독립적인 공동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구장의 허락을 받고 선교지로 떠났고, 지역 교회와 일치하여 활동했습니다.
성체와 고해성사의 회복
체나콜로를 단순한 친교 모임으로 만들지 않고, 성체조배와 묵주기도, 고해성사와 회개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영적 어린이의 마음
그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자신을 성모님께 맡기는 겸손과 단순함을 살았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
성모님께 대한 봉헌은 현실을 외면하는 신심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파괴하는 악에 맞서게 했습니다.
2026년 시복식에 참석한 마리아사제운동 국제대표 루카 페스카토리 신부도, 나자레노 신부의 사제적 마음을 성모님께서 양육하셨으며 그의 사제직이 남긴 열매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Diocese de Caceres
7. 마약과 매춘에 맞선 사제
자우루는 볼리비아 국경과 가까워 마약 유통의 영향을 받기 쉬운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대형 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외부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그 주변에 마약 판매와 매춘, 미성년자 착취가 확산되었습니다.
나자레노 신부는 이를 단순한 지역사회의 풍속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정을 파괴하고, 젊은이들의 영혼과 미래를 빼앗는 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강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경고했고, 젊은이들이 마약과 매춘에 빠지지 않도록 매주 토요일 밤 건전한 모임과 활동을 마련했습니다.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강조한 것은 폭력이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영적 무기였습니다.
성체조배와 묵주기도,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여러분을 구할 것입니다.
그의 활동으로 마약 밀매와 매춘을 통해 이익을 얻던 세력들은 경제적·사회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나자레노 신부의 존재는 점점 더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8. 순교의 밤
2001년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나자레노 신부는 약 100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체나콜로를 거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가벼운 비가 내리자 “이것은 나를 위한 하늘의 눈물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또 신자들에게 “나를 찾거든 언제나 감실 아래에서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날 밤 9시경, 복면을 쓴 두 남자가 사제관에 침입했습니다. 겉으로는 돈을 요구하며 강도 사건처럼 꾸미려 했지만, 돈을 가져가는 것이 실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피데스 통신이 전한 증언에 따르면, 범인 가운데 한 사람은 나자레노 신부에게 자신들이 그를 죽이러 왔으며, 그가 자신들을 “너무 많이 방해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범인은 나자레노 신부의 뒤쪽 머리와 목 부위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총탄은 그의 네 번째 척추 부근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카세리스와 상파울루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열하루 동안 고통을 겪은 뒤 2001년 2월 22일, 61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9.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용서하다
나자레노 신부의 순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순히 총을 맞아 죽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첨부 자료와 피데스 통신 모두 그가 병원에서 범인들을 용서한 뒤 선종했다고 전합니다. 스테파노 곱비 신부도 그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용서는 범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정의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약과 매춘, 인간 착취라는 악에는 끝까지 맞섰지만, 자신을 공격한 개인들의 영혼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단순한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르는 사제 순교자였음을 보여 줍니다.
10. 왜 교회는 그의 죽음을 ‘순교’로 인정했는가
모든 억울한 죽음이 교회법적인 의미의 순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어떤 죽음을 순교로 인정하려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와 신앙에 충실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으며, 박해자 쪽에도 신앙이나 그 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를 라틴어로 오디움 피데이, odium fidei, 곧 ‘신앙에 대한 증오’라고 합니다.
나자레노 신부는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이나 금전 문제 때문에 살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마약과 매춘, 미성년자 착취에 맞섰기 때문에 제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제직과 복음적 사목이 범죄 세력의 이익을 방해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25년 4월 14일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가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살해되었다는 순교 교령의 공포를 승인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중 마지막으로 승인된 순교 교령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티칸 뉴스
11. 2026년 6월 13일 시복
나자레노 신부의 시복식은 2026년 6월 13일 오전 10시, 그가 평생 사목했던 브라질 마투그로수주 자우루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교황 레오 14세의 특사로 파견된 주앙 브라즈 데 아비즈 추기경이 시복미사를 주례했으며, 수천 명의 신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시복식은 마투그로수주에서 거행된 최초의 시복식으로 전해집니다.
바티칸 뉴스
교황의 교서에서 나자레노 신부는 다음과 같은 인물로 소개되었습니다.
교구 사제이며 순교자
지칠 줄 모르는 복음의 선교사
사회적 자선사업을 풍성하게 일으킨 설립자
성모 신심을 헌신적으로 증진한 사제. 그의 전례적 기념일은 순교일인 2월 22일이 아니라, 교황의 시복 교서에 따라 매년 1월 12일로 정해졌습니다. 이날은 그가 자우루에서 본격적인 선교사목을 시작한 날과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복 다음 날인 2026년 6월 14일, 교황 레오 14세는 삼종기도 후 나자레노 신부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가 "복음의 이름으로 가장 가난한 이들을 보호했기 때문에 순교한 사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의 모범과 전구가 사제들과 온 교회의 선교를 지지해 주기를 기도했습니다.
12. 나자레노 신부의 성덕의 비결
나자레노 신부의 성덕은 어느 한 가지 특별한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의 성덕은 다음과 같은 일상적 충실함이 순교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 결과였습니다.
그는 성체 앞에 머무는 사제였습니다.
그는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제였습니다.
그는 고해소에서 자비로운 아버지가 된 사제였습니다.
그는 교황과 주교에게 순종한 교회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돈보다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한 사제였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사제였습니다.
그는 불의에는 맞섰지만 원수는 용서한 사제였습니다.
첨부 자료에 실린 피바 주교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성덕의 비결은 성모님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를 성체 안의 예수님께 인도하시고, 골고타에서 자신을 봉헌하신 예수님을 닮도록 양육하셨습니다. 그 결과 나자레노 신부는 마지막에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13. 마리아사제운동과 체나콜로에 주는 의미
복자 나자레노 신부의 시복은 마리아사제운동 전체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마리아사제운동의 영성을 단지 메시지를 읽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제직과 선교생활 안에서 실현했습니다.
체나콜로에서 바친 기도는 그를 세상과 멀어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에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성모 성심에 대한 봉헌은 그를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약과 매춘, 미성년자 착취에 맞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성체조배는 그를 현실 도피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병원과 노인시설, 학교와 본당 공동체를 세우게 했습니다.
교황과의 일치는 그에게 특권 의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역 교구장에게 순종하며 가장 가난한 변방에서 봉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자 나자레노 신부는 체나콜로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 줍니다. 체나콜로는 자신들만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성령을 청하고 성체 안의 예수님을 만나며, 그 힘으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에게 나아가는 교회를 위한 기도와 봉헌의 영성운동입니다.
맺음말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는 화려한 신학 저술이나 높은 교회 직책으로 알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외딴 선교지에서 성체를 모시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병든 이와 노인과 어린이를 돌본 평범한 본당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충실함이 마지막에는 자신의 피를 흘리는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는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성체 안의 예수님에게서 힘을 받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키다가 원수를 용서하며 생명을 바친 마리아사제운동의 사제 순교자입니다.
+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 사제 순교자여,
사제들과 선교사들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우리도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 온전히 봉헌된 삶을 살도록 빌어 주소서. 아멘.
1 month ago (edited) | [YT]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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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 찬미 예수님, 아베 마리아
전국 대회가 10월 17일(토)에 있습니다.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특히, 신부님들이 사제피정에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신동원 요셉 신부 배상
1 month ago | [YT]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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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찬미 예수님
2026년 8월 성모신심 미사와 체나콜로에 초대합니다.
- 일 시 : 8월 8일(토)
10:00 : 체나콜로
11:00 : 성모신심미사(주례: 신동원 요셉 신부)
- 장소: 가톨릭회관 3층
- 문의: 010-7142-0513
※ 중재기도 신청하시면 3개월간 기도와 미사 때 제대 봉헌합니다.
(문자/이메일; 010-9995-5284, savior69@naver.com)
- 묵주기도 : 환희의 신비
[메시지:292.10] 너희는 언제나 내 평화 안에 머물면서 만민을 위해 평화의 도구가 되기 바란다.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엄하게 당부하거니와, 너희는 침묵을 지키고, 애덕과 일치를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하며, 곤궁에 처한 사람은 누구든지 돕고, 누구와 더불어서건 항상 평화와 화해를 (심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라.
1 month ago | [YT]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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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1 month ago | [YT]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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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1 month ago | [YT]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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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찬미 예수님
2026년 7월 성모신심 미사와 체나콜로에 초대합니다.
- 일 시 : 7월 11일(토)
10:00 : 체나콜로
11:00 : 성모신심미사(주례: 한성호 알베르토 신부)
- 장소: 가톨릭회관 3층
- 문의: 010-7142-0513
※ 중재기도 신청하시면 3개월간 기도와 미사 때 제대 봉헌합니다.
(문자/이메일; 010-9995-5284, savior69@naver.com)
- 묵주기도 : 영광의 신비
[메시지:558.6] 나의 계획은 예수님의 완전한 모상이 되도록 내 모든 자녀들을 이끄는 데 있다. 그리하면 예수께서 다시 그들 안에 사시면서, 당신 구속의 위대한 선물에서 태어난 풍성한 열매들을 흐뭇이 바라보시게 된다.
2 months ago | [YT]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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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마리아 사제운동(M.S.M) 체나콜로
[국제MSM 대표 루카 페스카토리 신부님의 전달사항 ] 루까신부님의 전달사항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지금 브라질에 와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자레노 란치오티 신부님의 시복식이 거행됩니다. 고(故) 스테파노 신부님께서는 란치오티 신부님의 순교에 의한 시복 시성 절차가 시작되기를 강력히 원하셨습니다.
란치오티 신부님의 순교는 2025년 4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2026년 6월 13일 토요일, 바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 기념일에 그분은 복자로 선포될 예정입니다.
예수 성심을 닮은 한 사제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시고, 자신의 생명을 봉헌함으로써 온 세상에 모범으로 드러나게 하신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감사드립니다.
이로써 마리아사제운동(MSM)의 정신, 곧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의 정신이 모든 이에게 성덕에 이르는 길로 제시되고 드러나게 됩니다.
시복식은 아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시복 미사는 이탈리아 시간으로 오후 3시, 브라질 시간으로 오전 9시에 브라질 마투그로수 주 자우루(Jauru)에서 거행됩니다. 이곳은 나자레노 신부님께서 사목하셨던 본당입니다.
시복 미사 전에 체나콜로 기도회(Cenacolo)가 예정되어 있으나, 이것이 중계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국제마리아사제 운동 대표. 루까 뻬스까또리.(남마르타 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IfMug...
(아래는 Chatgpt 설명)
지금 보고 계신 분은 복자 나자레노 란치오티(Nazareno Lanciotti) 신부입니다.
### 생애
* 1940년 3월 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 1966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 1971년 브라질 선교사로 파견되어 브라질 마투그로수 주 자우루(Jauru) 지역에서 약 30년 동안 사목했습니다. ([바티칸 뉴스][1])
### 사목 활동
란치오티 신부는 단순히 성사 집전만 한 것이 아니라 지역 복음화와 인간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 본당 설립
* 수십 개의 농촌 공동체 조직
* 성체조배 확산
* 학교 설립
* 의료 지원 사업
* 양로원 운영
* 소신학교 설립 등에 힘썼습니다.
특히 그는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이 매우 깊은 사제였습니다. 매일 성체 안의 예수님께 머물며 사목의 힘을 얻었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한 삶을 살았습니다.
### 마리아사제운동(MSM)과의 관계
란치오티 신부는 마리아사제운동의 브라질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스테파노 곱비 신부의 가까운 협력자였습니다. 그는 체나콜로 모임을 전국적으로 이끌며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봉헌된 삶을 강조했습니다.
### 순교
란치오티 신부는 마약 거래, 미성년자 착취, 매춘 조직 등 지역의 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활동 때문에 적개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2001년 2월 11일, 괴한들이 사제관에 침입하여 그를 총으로 쏘았습니다. 그는 열흘 넘게 고통을 겪다가 2월 22일 선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까지 범인들을 용서했습니다.
### 복자품
교회는 그의 죽음을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앙에 대한 증오(odium fidei)" 때문에 일어난 순교로 인정했습니다.
* 2025년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순교를 승인하셨고,
* 2026년 6월 13일 브라질 자우루에서 시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 영성의 핵심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체 중심의 삶
2. 티 없으신 성모 성심에 대한 봉헌
3.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
그의 삶은 마리아사제운동이 강조하는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 완전히 봉헌된 사제"의 전형으로 자주 소개됩니다.
체나콜로 회원들에게는 특별히 의미 있는 복자입니다. 그는 곱비 신부의 영적 아들이었고, 성체와 성모님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증언하여 결국 순교의 은총까지 받은 사제이기 때문입니다.
3 months ago | [YT]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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